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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는 아닙니다. 너무 좋아 사자후 공간 정도······.

 

 

2024.11.09 카와

그것이 보이지 않으니 유년이 존재했다는 증거가 사라진 거나 마찬가지였다.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망각이 더 확실해졌다. 그는 있는 힘을 다해 유년을 지워 버리려 노력했지만, 날이 어두워지고 눈을 감으면 삼합원이 반짝반짝 빛나고 타운 하우스는 수정처럼 맑았다. 전혀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철거했다 해도 실체의 증거만 사라졌다. 지진을 두려워하면서 그것에 탄복하듯이, 기억 속에서는 완전한 파괴가 불가능했다. 몇 초 안에 철저히 붕괴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카와

2024.11.04 달쮸

그래도 이번에는 내가 반기를 들어 볼게. 예수와 베르나노스는 옳았지만 당신과 전도서는 동정이나 받을 수 있을 뿐이야.

이 세상에는 행복이라는 게 있어, 알렉. 그리고 고통은 행복의 반대가 아니라 우리가 허리를 숙이고 지나가야 할 좁은 골목이야. 쐐기풀 사이를 기어서 지나 은색 달빛에 젖은 숲속 고요한 빈터로.

달쮸

2024.11.04 달쮸

당신 『안나 카레니나』 초반에 나오는 그 유명한 구절을 잊지는 않았겠지. 거기서 톨스토이가 시골스럽고 펑퍼짐한 신의 겉옷을 두르고서 인자하고 자비를 베푸는 모습으로 혼란스러운 세상 위를 날아다니면서,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족은 제각각 나름의 사정이 따로 있다고 저 높은 곳에서 결정지었지. 물론 톨스토이는 존경하지만 나는 사실 인생은 그 반대라고 말하고 싶어. 불행한 사람들은 대부분 틀에 박혀 정해진 고통에 빠져 있어. 너무 많이 써서 닳고 닳은 상투적인 불행의 문구 네댓 개 중 하나가 공허한 일상에서 현실이 되어 나타나는 거야. 그렇지만 행복은 중국 화병처럼 희귀하고 섬세한 그릇이야. 소수의 사람들이 얻는 것으로, 몇 년에 걸쳐 조금씩 조금씩 파내거나 조각했고, 사람마다 각자 자기 모양과 형상대로, 각자 자기 기준에 따라 만들어서, 다른 행복과 닮은 행복은 하나도 없어. 그리고 사람들은 행복을 주조할 때 자신들의 고통과 굴욕도 함께 녹여 넣는 거야. 마치 납에서 금을 정제해 내듯이. 이 세상에는 행복이라는 게 있어, 알렉.

달쮸

2024.11.03 송이

달빛이 샤오촨의 검은 피부에 금가루를 뿌렸다. 주름이 얼굴 근육의 움직임에 따라 깊어졌다 얕아지기를 반복했다. 샤오촨의 입가는 닭갈비의 기름 자국이 남아 반짝거렸고, 치아 틈새에는 닭고기와 국수 찌꺼기가 끼어 있었다. 얼굴 전체가 풍요로웠다. 샤오촨의 이마 주름살에는 햇빛이 감춰져 있고, 팔자 주름에는 달빛이 감춰져 있었다. 눈초리 주름살에는 별빛이 감춰져 있었다. 땀방울이 솟아나는 코에는 넉넉한 빗물이 감춰져 있었다. 얘기를 주고받는 동안 햇빛과 달빛, 별빛과 빗줄기가 스쳐 갔다. 얼굴 전체가 일구지 않은 밭과 같았다. 땅은 비옥하고 초목은 무럭무럭 자라났다. 지렁이들이 흙을 뒤집고 바람과 비가 절로 순환했다. 톈홍은 자신의 얼굴이 척박한 황무지라서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름 사이에 감춰진 것은 전부 오래되고 더러운 땀이었다. 그래서 감히 웃을 수도 없었다. 웃었다가는 얼굴 전체의 근육이 주름을 쥐어짜 너무 많은 것들이 삐져나올 것만 같았다.

송이

2024.11.03 송이

내가 기억할 수 있는 한,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내 존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 그림이었다. 그림 그리는 사람 외에 다른 것이 되어보고 싶었던 적이 없었다. 나는 원래 나약하고 혼란스러운, 의지력이 없으며 미성숙한 인간이었지만, 그림이 모든 것을 이기고 나를 끌고 다녔다. 만병통치약처럼, 모든 인간적 약점의 처방으로서 그림은 나를 살렸다. 거짓, 나태함, 자기중심성, 비굴함, 천박함으로부터 나를 끌어올렸다. 그래서 그것을 포기했을 때, 나는 곧장 낮은 지점, 가장 동물적인 지점으로 내려갔던 것이다. 먹고 배설하고 잠을 자는, 본능만으로 남은 존재가 되었던 것이다.

그림 없이 존재의 균형을 잡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나는 예전에 미처 알고 있지 못했다. 내 모든 에너지는 그림을 위해 삶에서 유보되었고 저축되었다. 오로지 작업을 위해 모든 것이 유보된 상태, 그것이 자연인으로서의 내 삶이었다. 다시 말해, 나는 살아보았던 적이 없다. 나는 사는 법을 모른다.

송이

2024.11.01 블팡

희망이 무엇이 아닌지 말하는 것은 중요하다. 희망은 모든 것이 과거에도 좋았고 현재에도 좋고 미래에도 좋을 것이라는 믿음이 아니다. 엄청난 고통과 엄청난 파괴의 증거가 우리 주위에 온통 널려 있다. 내가 관심을 갖는 희망은 구체적 가능성과 결합된 넓은 전망, 우리에게 행동하라고 권유하거나 요청하는 전망이다. 그건 ‘모든 게 나빠지고 있어’라는 식의 서사敍事에 맞서는 것일 수 있지만, ‘모든 게 잘돼가고 있어’라는 식의 화창한 서사도 아니다. 그건 복잡성과 불확실성에 관한, 돌파구를 열어두는 설명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
희망은 장차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전제, 불확실성의 광막함 속에 행동할 공간이 펼쳐진다는 전제 위에 자리 잡는다. 불확실성을 인식할 때 우리는 자신이—나 혼자, 또는 수십, 수백만의 다른 이들과 힘을 합쳐—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블팡

2024.11.01 블팡

난 이제 어떻게 해, 요카난? 홍수로도 해일로도 내 열정을 끌 수 없는데.
난 공주였어. 그런데도 당신은 날 경멸했지.
난 처녀였어. 그런데 당신은 내 순결을 앗아갔지.
난 정숙한 처녀였는데, 당신은 내 핏속에 불을 채웠지……
아! 아! 왜 나를 보지 않은 거야, 요카난? 날 봤으면 당신도 분명히 날 사랑했을 텐데. 분명히 당신도 날 사랑했을 거야. 사랑의 신비는 죽음의 신비보다 위대하지. 인간에겐 오직 사랑뿐이야.

블팡

2024.11.01 블팡

이 작은 시골이 바로 그의 귀신들의 땅이었다.

블팡

2024.10.31 비름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비름

2024.10.29 봄비

거봐요, 물이 멀쩡한 사람도 미치게 한다니까요.

봄비

2024.10.29 봄비

그 시절에도 사랑은 존재했다.

봄비

2024.10.29 봄비

별 조각은 둥글었다. 오랫동안 드넓은 하늘을 날아 내려온 사이에 모서리가 닳아 매끄러워졌겠거니 했다.

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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